150cm 엄마 vs 150cm 고추대 , 5월의 형제 소환령과 고추대 박기 대작전
엄마한테 연락이 왔어요. "5월 초에 너네 내려와야 해."
이유를 여쭤봤더니, 고추대를 박아야 한다고 하시더라고요. 아직 밭에 모종도 심기 전인데 벌써 형제 소환령이 떨어진 거예요. 연휴로 우리가 일정을 잡을까봐 미리 우리를 선점하시는 노력함을 보인 우리 엄마. ㅎㅎ
장난으로 그냥 엄마가 하시면 안 되냐고 여쭤봤더니 단호하게 "안 돼!"라고 하셨어요. 150cm 고추대를 키가 150cm 우리 엄마가 혼자 박으시려면... 팔이 머리 위로 쭉 올라가서 내려쳐야 하는데, 그 동작을 밭 전체에 반복하다 보면 고추대를 다 박기도 전에 어깨가 나갈 우려가 있으시다는 거예요.
그 말씀에 바로 내려 갈테니, 절대 먼저 시작하지도 마시라고 이야기했습니다. 나이 드신 분이 그 동작을 수십 번 반복하시면 진짜 어깨 다치실 수 있거든요!
고추대(지주대)가 뭐고 왜 꼭 필요한 걸까요?
고추대, 즉 지주대는 고추가 자라면서 쓰러지지 않도록 받쳐주는 버팀대예요. 고추는 키가 꽤 크게 자라고, 열매까지 주렁주렁 달리면 무게가 상당하거든요. 거기다 비바람에도 특히 약한 작물이라서, 지주대 없이는 바람 한 번만 불어도 그대로 쓰러져 버린답니다.
그래서 고추 농사에서 지주대 세우기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예요!
지주대 종류는 보통 각목, 쇠파이프, 플라스틱 지주대 등이 있는데, 농가에서는 보통 내구성이 좋은 쇠파이프나 플라스틱 지주대를 많이 사용해요. 그리고 표준 길이가 바로 120~150cm예요. 고추가 잘 자라면 평균키인 성인 여성 머리 하나가 겨우 보일 정도이니 150cm 높이 정도는 박아 주어야 한답니다. 엄마는 박을때도 나중에 뽑을때도 조금 쉽게 하시고자 보통은 플라스틱 지주대를 사용하십니다.
고추대 박는 방법 — 간격이 중요해요
지주대 세우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예요.
방법 1. 고추 한 포기당 지주대 하나씩
심자마자 바로 옆에 지주대를 하나씩 꽂아주는 방법이에요. 뿌리가 아직 넓게 퍼지지 않은 초기에 심어야 뿌리를 다치지 않게 할 수 있어요.
방법 2. 3~5포기당 지주대 하나
고추 3~5포기 간격마다 지주대를 하나씩 꽂고, 끈으로 지그재그로 엮어서 고추들을 한꺼번에 지지해주는 방법이에요. 대규모 농사에서 많이 쓰는 방식이에요.
지주대를 꽂고 나서는 고추 키의 2/3 정도 높이에 끈으로 묶어줘야 해요. 그리고 고추가 자라면서 2~3회 정도 추가로 묶어줘야 한답니다. 한 번 세운다고 끝이 아닌 거예요!
형제들이 소환된 이유, 이제 이해가 되시죠?
자, 이제 왜 형제 소환령이 내려졌는지 완벽하게 이해가 됩니다.
150cm 고추대를 망치 역할을 하는 고추대타격봉으로 위에서 내려쳐 땅에 박아야 하는데, 키가 똑같은 150cm 엄마가 혼자 하시면 팔을 최대한 위로 들어올려서 반복적으로 내리쳐야 해요. 이게 한두 번이 아니라 밭 전체에 수십 개를 박아야 하니 어깨 관절에 엄청난 무리가 오는 거죠.
그래서 엄마는 고추대타격봉을 여러 개 준비해두시고, 형제들이 힘을 모아 박을 생각이라고 하셨어요. 파김치 손질할 때도 엄마가 일감 들고 오시면 형제들이 자연스럽게 옆으로 모여들듯이, 이번에도 자연스럽게 가족 모임의 장이 마련되었습니다.
오랜만에 다같이 모여 엄마 일손도 돕고 일을 마친 후에는 엄마가 보상으로 바베큐 파티를 하자고 제안 하셔서 벌써부터 기대가 됩니다.
5월에 내려가면 엄마 밭에서 형제들이 일렬로 서서 고추대 박는 풍경이 펼쳐질 거예요. 생각만 해도 웃기면서도 왠지 모르게 뿌듯한 그림이에요. 힘쓰는 건 우리가 할테니 엄마는 옆에서 잔소리는 줄여 주시고 지휘만 하세요~!
다음 포스팅에서는 그 고추대를 박아줄 외국인 노동자분들 이야기와, 농촌 인력난의 현실에 대해 써볼게요.